[식인의 추억]세계의 식인 살인마를 소개합니다 2탄


6. 호아킴 크롤(Joachim Kroll), 독일

1933년 독일 힌덴부르크에서 태어난 호아킴 크롤은 1955년부터 독일 전역에 죽음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는 피해자를 급습해 목을 졸라 죽인 뒤 시체를 강간하고 토막냈으며, 살점을 도려내 먹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피부가 벗겨진 시체가 발견되면서 식인을 목적으로 한 살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죠.

1976년 7월 3일, 크롤은 4살 소녀 메리언 케트너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당시 크롤의 옆집에 살던 이웃이 크롤의 집에 배수구가 막힌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무엇 때문에 배수구가 막혔냐고 물어보자 단순히 '내장'이라고 대답하자 이를 이상하게 생각해 신고했다고 합니다.





경찰이 크롤의 집을 급습했을 때 크롤은 소녀의 작은 손을 난로에 올려서 요리하고 있었습니다.

집 내부를 수색하자 처참히 훼손된 케트너의 시신을 발견됐으며, 시신의 일부는 냉장고에 보관돼있었죠.

배수구에는 이웃의 신고대로 소녀의 창자가 가득 들어 막혀있었고, 크롤은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체포된 크롤은 다른 13건의 살인에 대해 자백했고, 재판과정에서는 식료품 값을 아끼기 위해 시체를 먹었다고 진술했죠.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은 크롤은 1991년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7. 쓰토무 미야자키(Tsutomu Miyazaki), 일본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난 쓰토무 미야자키는 손가락이 뒤틀리고 손목에 거의 바로 붙어있는 기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손 때문에 학교에서 심한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988년 부터 1989년 사이, 미야자키는 4세에서 7세 사이의 소녀 4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강간, 토막냈습니다.

그는 한 희생자의 피를 마시고 팔다리를 뜯어 먹었죠.

일본 미디어에서는 그를 드라큘라, 오타쿠 살인마라 불렀습니다.

미야자키는 낮 동안 회사에 나갈 때는 평범하고 매너좋은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퇴근을 하면 랜덤하게 소녀들을 골라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그는 첫번 째 희생자인 마리코노양의 시신을 부패할 때 까지 기다렸다가 손발을 잘라 보관했으며, 시신을 화장해 유골가루를 만들어 희생자의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1989년 7월 23일, 미야자키는 공원에서 한 소녀를 성추행하려다 소녀의 아버지에게 발견됐고, 맨발로 도주하던 중 자신의 차를 찾기 위해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다가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차분한 모습을 보여 사람들을 더욱 소름끼치게 만들었는데요.

미야자키의 사건은 일본내 오타쿠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고, 폭력적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그의 싸이코적인 살인에 도움을 줬다는 주장들이 제기됐죠.

사실상 현재 오타쿠, 오덕이라 불리는 매니아 층에게 쏠린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시각들은 바로 미야자키 사건이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미야자키는 사형을 선고 받고 2008년 6월 17일에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8. 외즈규르 뎅기스(Özgür Dengiz), 터키

1980년 터키 앙카라에서 태어난 외즈규르 뎅기스는 17세에 친구를 살해하면서 10년 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는 7년간 복역후 가석방돼 풀려났으나 2007년 6월 5일, 뎅기스는 노트북을 사려다 직원이 뎅기스에게 이걸 살 형편이 안돼보인다고 얘기했다는 이유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뎅기는 쓰레기 수거인을 총으로 쏴 죽였으며, 몇 시간 뒤에는 55세의 지자체 직원을 살해합니다.

뎅기스는 시체를 식칼로 피부와 설점을 도려내 먹었으며, 남는 것은 가방에 넣어 갔습니다.

시체는 유기하고 발라낸 살점은 냉장고에 보관했으며, 보관한 살점 중 일부는 유기견들에게 먹이로 던져줬습니다.





경찰은 희생자들의 휴대폰을 추적해 뎅기스를 찾아냈으며, 아파트를 수색해 냉장고에 보관된 다량의 인육을 발견했죠.

체포된 뎅기스는 인육을 먹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는데요.

그는 "인육을 먹는 것이 너무 좋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바보같이 소고기만 먹어왔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그는 간혹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고 전해지는데요.

이후 정확한 재판 결과나 소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9. 도란헬 바르가스(Dorangel Vargas), 베네수엘라

1957년에 태어난 도란헬 바가스는 어릴적 부터 부모님마저 '악마가 들렸다'는 소리를 할 정도로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1995년에 산 크리스토발에서 노숙을 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살인도 시작했습니다.

1995년 부터 1999년 사이 그가 살인하고 먹어치운 사람만 무려 10명. 

그는 '안데스의 한니발 렉터'로 불리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인터뷰에 "나는 사람을 먹었고, 누구든 사람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먹기전에 깨끗이 세척하고 고명을 잘 곁들여야 질병을 피할 수 있다.

나는 근육 부위만 먹는데 특히 허벅지와 종아리를 좋아한다. 혀로는 맛있는 스튜를 만들 수 잇고 눈을 이용해서는 건강한 스프를 만들 수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죠.





바르가스는 여성보다는 남성을 선호했다고 하는데요. 

손과 발, 성기는 절대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과체중인 사람과 노인은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과체중인 사람은 콜레스트롤이 많고, 노인은 오염됐고 질기다"고 밝혔죠.

일부 사람들은 바르가스가 장기 밀매업자들의 희생양으로 넘겨졌을 것이라 예상했는데요, 결과야 어쨌든 그는 2012년에 구류됐으나 정신질환 문제로 여전히 선고유예상태라고 합니다.







10. 유영철, 한국

해외에서도 손 꼽히는 살인마로 유명한 유영철.

그는 연쇄살인범이자 스스로 식인을 했다고 자백해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2003년 부터 2004년 사이, 유영철은 21명을 살해했습니다.

주로 성매매여성과 부유한 노인들을 목표로 삼아 망치로 잔인하게 때려 죽였죠.

유영철은 희생자의 목을 잘라 건설현장 등에 유기했으며, 11명의 피해자는 시신을 훼손하고 살점과 생 간을 먹는 엽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살해동기를 묻는 TV 인터뷰에서 "여자들은 창녀가 돼선 안되고, 부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2005년 6월 19일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유영철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 폐지 열풍이 거센 가운데 한국 사람 누구도 함부로 사형제 폐지를 입 밖에 낼 수 없게 만들었으며, 인권을 논하는 사람들을 범죄자를 옹호하는 사람들로 매도하게 만들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죠.

덕분에 한국은 미국, 일본, 대만을 비롯해 민주주의 국가중 유일하게 사형제가 남아있는 4개국으로 남게 됐습니다.

 

2015-05-19 by 진짜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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